인사말_k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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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한센병 자료관의 개요와 당부 말씀

한센병 자료관은 처음에 ‘타카마츠노미야 기념 한센병 자료관’으로 1993년 6월에 개관했습니다. 그 후 규모를 크게 확장하고 명칭도 ‘국립 한센병 자료관’으로 변경하여 2007년 4월에 다시 개관했습니다.

국립 한센병 자료관의 설치 근거는 ‘한센병 문제 해결 촉진에 관한 법률’(2009년 4월 시행)의 제4장 ‘명예 회복 및 사망자 추도’ 중, 제18조 ‘국가는 한센병 환자였던 자 등의 명예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국립 한센병 자료관을 설치하고 역사적 건조물의 보존 등 한센병 대책 역사에 관한 올바른 지식의 보급 및 계몽과 기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한다(후략)’라는 조문입니다.

전국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협의회(전요협)는 이 조항에 대해 ‘현재 국립 한센병 자료관은 그 목적으로서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의 보급과 계몽을 통한 편견ㆍ차별의 해소 및 환자ㆍ한센병력자의 명예 회복을 도모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한센병에 대한 올바른 지식도 필요합니다만, 환자ㆍ한센병력자의 명예 회복을 도모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은 “한센병 대책의 역사에 관한 올바른 지식”일 것입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한센병 대책의 역사는 1897년 제1회 국제나회의 <한센병 예방에는 격리가 최선>이라는 제안을 그대로 채택하여, 모든 환자를 격리함으로써 한센병이 사라진다는 아주 단순한 사고를 바탕으로 절대 격리 즉, 모든 환자의 평생 격리를 목표로 했습니다. 1907년에 ‘나병 예방에 관한 건’이 제정되어 우선은 떠돌이 환자의 수용이 시작되었고, 1931년에는 ‘나병 예방법’으로 개정되어 절대 격리에 대한 발판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무렵 이미 국제적으로는 격리할 필요성이 낮다는 평가가 높아졌고 프로민의 효과가 확인된 1940년대 전반이 되자 격리 자체의 필요성이 문제시 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프로민의 효과를 그런대로 인정하면서도 재발로 인한 감염원이 되는 것을 우려하여 격리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인식을 굽히지 않았으며, 만연히 타성적으로 격리 상태를 이어갔습니다. 회복자의 사회 복귀도 대부분 당사자에게 떠맡기고, 적극적인 지원도 없이 그 어려움을 뿌리 깊은 편견 때문이라고 여기며 사회 계몽을 등한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995년 일본 나학회는 총회 자리에서 정식으로 이 잘못에 대해 사죄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경위는 현재의 <환자 중심 의료>라는 기본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완전히 정반대의 행위를 강행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립 한센병 자료관의 전시도 절대 격리를 주도한 미츠다 켄스케와 그것을 국책으로 지원한 국가를 비판하는 구도로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단, 이와 같은 한센병 대책의 역사에 대해 ‘미츠다가 잘못했다’, ‘국가도 나빴다’, ‘한센병 환자가 불쌍했다’ 등과 같이 본인은 제삼자의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1951년 1월에 야마나시현에서 장남이 한센병 진단을 받은 것을 비관하여 일가족 9명이 청산가리를 음독해 동반 자살을 하는 너무나도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 가족이 당시 겨우 다섯 살이었던 막내 여자 아이까지 저승길 동무로 삼은 것은 한센병을 무턱대고 혐오하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가족 모두가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부터 이미 반세기 이상이 지나 한센병에 대한 상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현재는 치료를 시작하고 며칠만 지나도 균은 감염성을 상실합니다.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와 영유아의 밀접한 접촉이 빈번히 반복된 경우를 제외하고 감염ㆍ발병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즉, 한센병은 다른 만성 감염증에 비해 더 안전한 <일반적인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센병의 상식을 염두에 두고 다시 한번 야마나시현의 일가족 동반 자살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현재의 상식으로 보면 이와 같은 사건은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는 현재 치료 중인 환자나 회복자를 불문하고 함께 있어도, 같이 생활해도 어떤 문제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야마나시현 일가족이 동반 자살에 몰리게 된 것은 <한센병은 불쾌한 병>,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병>이라고 주변 사람들이 생각해 버리는 것을 한 가정의 가장이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을지도 모른다는 이와 같은 공포는 과연 기우였을까요? 여러분은 이것을 지금, 오해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마 마을 사람들이 환자와 그 가족을 기피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환자와 그 가족을 배제하는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결코 그런 가해자가 되지 않을 거야’라고 부디 진심으로 맹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당신의 맹세를 뒤에서 돕는 것이 국립 한센병 자료관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라도 꼭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국립 한센병 자료관